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폰 파펜 (문단 편집) === 젊은 시절 === [[파일:B1JB6UjCAAEEKEk.jpg|width=250]] 파펜은 [[독일 제국]] [[라인란트]]에서 태어났다. 아버지는 독일 서부 귀족 가문 출신의 [[독일 제국]] 군인이었다. [[귀족]]이긴 한데 [[명문]] 가문은 아니었다. 다만 아버지가 [[빌헬름 2세]]의 학우였던 정도. 이후 [[승마]]에 뛰어나 [[기병]]장교로 임관했고 참모부에 배속된다. 여기서 베프를 맺은게 나중에 애증의 관계인 [[쿠르트 폰 슐라이허]]이다. [[제1차 세계대전]] 당시에는 [[미국]] 주재 [[국방무관]]으로서 대미외교를 담당하여, 본업인 군인보다 외교임무를 더 많이 맡았다. [[프랭클린 루스벨트]], [[더글러스 맥아더]](!)와 절친했고, [[멕시코]]와 동맹을 맺어 [[치머만 전보|미국 뒤통수를 치려고 했던 것]]도 사실 파펜의 작품. 심지어 [[인도]] 독립주의자들의 무장봉기를 부추기려고, [[1915년]]에는 [[미국]]에서 총을 구입해서 배에 실어서 [[영국령 인도]]에 보내려는 공작도 꾸몄다. 이것도 운이 없어서 실패. 하지만 [[1916년]] [[독일]], [[오스트리아]] 노동자들의 [[군수공장]] [[파업]]을 주도하며 파괴공작을 벌이다가 [[미국]]에서 추방당했고, 중간에 [[영국 해군]]한테 걸려서 첩보 상황도 다 노출당했다. 이후 [[철십자 훈장]]을 받고, [[대대장]]으로 [[서부전선]]에 참전했으며, [[오스만 제국]]에 파견된 독일 군사고문단의 참모가 되었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. 다만 이때 [[히틀러]]와의 다리가 되는 [[요아힘 폰 리벤트로프|리벤트로프]]를 만났다. 전쟁 끝날 때 마흔이었으니 대단한 군공이 있을 것은 없었다. 단지 파업 파괴공작으로 추방당하여 국제적으로 유명(?) 했을 뿐. 전쟁이 끝날 때쯤 육군 [[소령]]이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